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테보 펜다로프스키 (문단 편집) === 정치 경력 === 대학을 졸업하고 펜다로프스키는 스코페의 한 법률 연구소에서 연수생으로 일했다가 북마케도니아 내무부 분석 부서에서 근무했다. [[1998년]]에는 내무부 분석연구과장, 내무부 대변인으로 임명되었다. 이후 [[2001년]] [[보리스 트라이코프스키]] 대통령 내각에 합류했으며, [[2004년]] [[4월 26일]] 트라이코프스키 대통령이 [[로팀랴]]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임기 중 갑자기 사망하자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[[류프초 요르다노프스키]]에 의해 선거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선거를 지휘하게 된다. 이후 [[2005년]] [[브란코 츠르벤코프스키]] 대통령 임기 때에도 대통령 내각에 입성, 2009년 츠르벤코프스키 대통령의 임기까지 내각을 지키다가 [[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-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]]의 [[조르게 이바노프]]가 당선되자 내각을 떠나게 된다. [[2010년대]] 초부터 펜다로프스키는 [[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]]에 입당해 활동하며 입지를 넓혀갔다. 2014년에는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이 대선에서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-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의 조르게 이바노프가 다시 당선되었다. 하지만 이 대선은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-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과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의 갈등을 야기했고, 야당이였던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 대표인 [[조란 자에프]]도 여당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. 자에프 당 대표는 여당이 야당을 도청했다고 공개했고, 펜다로프스키 자신도 [[2011년]] 도청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. 이 사건은 안그래도 좋지 않았던 여야의 사이를 더 악화시켰고,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[[프르치노 조약]]에서 당시 총리였던 [[니콜라 그루에프스키]]의 사임이 확정되었고, 총선이 2016년에 열리는것으로 조정되었다. 2016년 총선에서 펜다로프스키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, 2017년에는 북마케도니아의 [[NATO]] 가입을 위해 국가 조정관으로 임명되어, 국회의원에서 물러났다. 그리고 [[프레스파 협정]]이 체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